5곡의 수록곡을 다 듣고, 몇 번을 반복해서 듣고, 다시 제목을 본다. ‘답장’이라는 말이 새삼 애틋하다. 간절하지만 왠지 닿을 수 없다는 기분 때문이다. 이 답장을 쓰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지난 것일까, 어째서 이제야 말하게 된 걸까, 그때는 왜 아무 것도 하지 못했을까. ‘답장’이란 결국 그 대상이 받아야만 하는 것이므로 이런 생각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동률의 <답장>이 가리키는 시공간은 과거의 어떤 장소다. 수록곡의 면면을 보면 더욱 그렇다. 애틋한 로맨스 영화가 떠오르는 “Moonlight“의 사랑스러운 선율, 이소라와 처음 합을 맞춘, 덕분에 90년대 혼성 듀엣곡처럼 들리는 “사랑한다 말해도”, 고상지의 선 굵은 터치가 근사한 탱고 “연극”, 그리고 피터 세테라(혹은 시카고)의 러브송처럼 웅장한 80년대 스타일의 “Contact” 등, 이 곡들은 나를 언젠가의 그 어딘가로 이끈다. 한때 내가 있었던 것 같지만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시간과 장소. 생각해보면 그리움이란 애초에 그런 감각인지도 모른다.
이 그리움은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노랫말과 스타일, 향수를 자아내는 멜로디 라인과 일부러 거칠게 다듬은 편곡 같은 것들로부터 생긴다. 향수와 고독. 이 감정의 깊이가 깊을 수록 간절함은 배가 된다. 이때 싱어송라이터로서 김동률은 대체로 한결같은 이미지를 가진다. 부드럽고 편안한 음색과 한 마디 끝날 때마다 적절하게 떨리는 바이브레이션이 우아하면서도 고독한 남자의 뒷모습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 고독은 절망적이지 않다. 때때로 좌절감과 낭패감, 우울과 후회가 함께 하지만 치명적으로 삶을 파고들지 않는다. 그래서 우아하다. 감정적인 순간들이 그 주변을 휘감지만 거기에 사로잡히진 않는다. 김동률의 고독은 그런 것이다.
첫 곡이자 타이틀인 “답장”은 이런 감각을 가장 명확히 드러내는 곡이다. 기존의 대표곡들처럼 독백처럼 들리지만 가만 들어보면 조금 다른 인상을 주기도 한다. 후회하지만 약간의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것이라 여겨지는 아픔. 슬픔과 후회라기보다는 문득 이제야 말하게 된 감정을 조용히 고백하는 인상이다. 그래서 더 안타깝기도 하고, 그래서 더욱 위로받기도 한다. 덕분에 ‘우리’는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르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서로에게 ‘괜찮다’고 말하게 된다.
<답장>은 1997년 전람회의 <졸업> 앨범 이후 처음으로 5곡을 수록한 앨범인데, 김동률의 솔로로는 처음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발표한 그의 앨범을 돌아보면, 분량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일관된 정서, 수록곡의 내러티브를 연결해 구조적으로 동일한 감각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앨범의 몰입도는 상당히 높다. 여기엔 이전 앨범들과 달리 황성제, 정수민 두 사람이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한 것이 좋은 영향을 줬다고 본다. 한편 이 앨범의 구성과 밀도는 싱글 중심으로 재편된 한국의 음악 시장에서, 싱어송라이터이자 앨범 아티스트가 마주치는 여러 문제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한 결과란 생각도 든다. 박인영 음악감독의 지휘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녹음된 현악 파트와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곡들은 앨범을 모자라거나 넘치지도 않게 꼭 채운다.
마지막으로, 수록곡들 중에서 가장 이질적인 “연극”은 노랫말에 집중해 보면 좋겠다. 내게 이 노래는 러브송이 아니라 창작과 영감에 대한 은유로 들리기 때문이다. 20세기든 21세기든, 결국 창작이란 뭔가에 사로잡혔다가 반드시 버림받는 일이 아닐까. 그래서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보내는 ‘답장’이란, 담담하고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가만히 들여다본다.
-대중문화 평론가 차우진-